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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말을 입에 담지만 않으면 절대 ‘죽음’이 일어나지 않을 거 라고 생각하는 부모. 그리고 그들이 아흔 살이 넘어 병치레를 하다가 세상을 뜨기까지 긴 이별의 과정을 겪어낸 외동딸. 이 책은 만화가 라즈 채스트 자신이 만만치 않은 성격의 부모와 함께 보낸 마지막 몇 년의 기록이다.

저자는 어느 날 들른 부모의 집 구석구석에 내려앉은 더께를 보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전조를 느낀다.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부모를 찾아가면서, 노인 전문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하고, 노인복지시설로 부모를 이사시킨 후에도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며 병구완을 한다. 결국 부모의 죽음을 마주하고 난 이후의 날들까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선 부모 곁을 지키고 그들을 떠나보낸 지극히 현실적인 과정을 꼼꼼하게, 그리고 특유의 따뜻한 위트를 잃지 않고 그려낸다.

나이든 부모를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함과, 돈은 떨어져가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등 자식으로서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정이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묘사된다. 한편 그 시간 동안 어린 시절을 반추하며 아버지에 대한 연민,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딸의 노력이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들어가며
1장 마지막의 시작
2장 둥지로 돌아오다
3장 노인 전문 변호사
4장 갈라파고스 섬
5장 낙상
6장 병원에서
7장 선다우닝
8장 한 시대의 종말
9장 이사
10장 옛 아파트
11장 ‘그곳’
12장 다음 단계
13장 여기도 저기도 크리넥스 티슈
14장 죽음 이휴
15장 엘리자베스, 혼자 남다
16장 침대맡 이야기
17장 번데기
18장 끝
에필로그



노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이었고, 무엇보다 만화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다.

저자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인터넷에서 그녀의 실제 사진을 찾아보기도 했다.

(저자는 만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예쁘고 귀여운 느낌의 중년 여성이었다.

) 저자 라즈 채스트는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초등학교 동창이던 동갑내기 부모가 40대에 낳은 외동딸이다.

학교 교감 선생님이던 엄마의 강압적인 성격과 아빠의 유약한 성격 사이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기분으로 유년기를 보냈다.

 “너희 엄마 아빠는 너무 늙었어.

곧 죽을 거야!”하는 아이들의 악담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기억에 남았는지 책 서두에 등장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90세가 넘어 거의 100세 가까이 살다가 아주 천천히 죽어 간다.

1, 2차 대전을 겪은 세대로서 돈을 쓸 줄 모르고 늘 저축했던 부모가 남긴 꽤 많은 금액을 요양원과 간병인에게 거의 다 소모할 정도로 부모의 건강 악화와 치매가 오래도록 진행되었다.

그 이별의 과정을 준비하고 부모님 평생의 짐들도 정리하면서 보호자 역할을 하는 딸을 보면서 지금 바로 내가 직면한 상황과 훗날 내 딸이 마주하게 될 일들을 떠올렸다.

누구나 늙고 체력과 판단력이 떨어져 타인의 보호를 받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면에서 아등바등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외동인 우리 딸이 부모 간병에 뼛골이 휘지 않도록 라즈 채스트의 부모처럼 재정적인 준비라도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마지막까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자식을 이해하는 부모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다.

고령화 시대에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모두가 준비해야 할 노후와 이별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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