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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꽃샘추위도 더 이상 넘보지 못하는 4월이 되었다. 겨우내 웅크렸던 어깨를 펴고 화사한 봄 햇살을 받으며 나들이에 나서기 좋을 때다. 자, 어디로 나설거나? 지도책을 펼쳐 놓고 여기저기 살펴보지만, "그래, 바로 여기다!" 싶은 곳이 언뜻 눈에 띄지 않는다. 고적함을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된 사찰, 반질반질 닳고닳아서 사람들 주머니만 노리는 관광지, 인파에 치이고 줄서기에 질려버리는 놀이동산……. 이렇게 봄나들이 나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무 박사 박상진 교수는 천연기념물 나무 찾아가기 를 권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이니, 수백년 나이테를 품고 있는 아름드리 등걸과 이리저리 휘어지며 뻗어나간 가지들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러나 박상진 교수가 우리에게 천연기념물 나무 찾아가기 를 권하는 이유는 이러한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그가 더 끌리는 것은 천연기념물 나무가 수백 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나이테에 간직해 온 역사의 이야기들과 휘어진 가지들마다 품고 있는 흥미진진한 사연들이다. 천연기념물 나무들 앞에서 그 숱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일상의 찌꺼기를 털어낼 수 있었노라고 고백하고 있을 정도이다. 일상이 지겨워질 때마다 그렇게 천연기념물 나무들을 찾아 나섰던 그가, 그 나무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받아 적어 묶은 책이 바로 이다. 10년 가까이 전국을 누비며 만나본 200여 곳의 천연기념물 나무들 중에서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48곳의 천연기념물 나무들을 골라 펼쳐놓고 있는 이야기 보따리들은 몹시 흥미롭다.
천연기념물 나무들은 적게는 수백 년에서 많게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나이테에 간직하고 있는 고목(古木)들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건너오면서도 아직까지도 생명을 잃지 않고 매년 봄이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천연기념물 나무 앞에서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에 비하면 기껏해야 100년을 넘기기 어려운 우리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초라한가! 하지만 우리가 느끼게 되는 이러한 자연의 경이나 인생무상(人生無常)은 천연기념물 나무들의 속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하고 따스한 느낌으로 우리의 가슴을 채워준다. 천연기념물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사연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기 앞으로 등기된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매년 세금까지 내고 마을의 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주고 있는 소나무(천연기념물 제294호 경북 예천군 감천면의 석송령)의 유쾌한 미담이 있는가 하면, 남북 분단으로 졸지에 이산 가족이 되어 북에 두고 온 아내를 늘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홀아비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 인천 강화군 서도면의 은행나무)의 애달픈 사연도 있다.
천연기념물 나무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닮게 된 것은 그들의 탄생이 사
람의 손에 의한 것이고 커나가면서도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는 망국의 한을 이기지 못해 금강산으로 향하던 도중에 용문사에 잠시 들른 마의태자가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튼 것이라고 한다. 또한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본관 마당에 있는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은 김종서 일가의 피로 얼룩진 계유정난과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풍양 조씨의 세도 정치와 안동 김씨를 제거하기 위한 대원군의 왕정복고 모의 등 파란만장한 조선 600년 역사의 현장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자라난 나무이다.
이처럼 왕족이나 귀족 또는 학자들과 같이 역사에 이름이 전해지는 위인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들도 있지만, 가진 것 없고 기댈 데도 없는 일반
서민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들도 많이 있다. 전북 진안군 마령초등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300살 먹은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14호)가 바로 그런 나무들 중의 하나이다. 옛날 마령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죽을 때마다 그 아이의 무덤 곁에 이팝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고 한다. 5월 중순이 되면 새하얀 꽃잎들이 피어나 연초록 나뭇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를 완전히 뒤덮어 버리는 이팝나무의 꽃은 멀리서 보면 마치 그릇에 흰 쌀밥이 수북하게 담겨진 것처럼 보인다. 즉 어린 자식을 땅에 묻으며 이팝나무를 함께 심었던 이유는 한번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고 죽은 아이의 영혼이 저승에서나마 이밥 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눈물겨운 마음씀이었던 것이다.
의 지은이 박상진 교수는 천연기념물 나무가 품고 있는 이러한 갖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나무와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때로는 천연기념물 나무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겪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슬쩍 풀어놓기도 한다. 그 음성은 손자를 앞에 두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처럼 한없이 순박하고 정겹다.
하지만 그는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마침내는 분노하는 모습도 가끔씩 보여주는데, 그럴 때면 괜히 우리의 마음도 뜨끔해진다. 추운 겨울날 그가 강화 갑곶리에 있는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8호)를 보러 가기 위하여 택시를 잡아타고 행선지를 말해 주었을 때, "예? 갑곶에 탱자나무가 있었나요?" 라고 반문해 그를 실망시켰던 택시 기사는 바로 천연기념물 나무들에 너무나도 무지한 우리의 초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자꾸 옆으로 퍼지는 나무 줄기를 고정시킨답시고 굵은 쇠꼬챙이를 줄기마다 사정없이 박아두고 서로 묶어둔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반송(천연기념물 제291호) 앞에서 그가 토해내는 안타까움과 분노는 멋진 사진을 찍는답시고 울타리를 넘어가 나무의 가지에 올라타고 앉아 사진을 찍곤 했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당하는 나무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이처럼 박상진 교수는 천연기념물 나무들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사연들을 알아듣는 밝
은 귀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없이 참고 견디고 있는 무시와 고통까지도 알아보는 맑은 눈까지 지니고 있다. 즉, 그는 천연기념물 나무들과 속 깊은 대화를 주고받고 마음 나누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이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경지이다. 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들어야 할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나무 사랑의 이야기이다.
「궁궐의 우리 나무」「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의 저자 박상진 교수가 또 다른 나무 사랑을 보여주는 책,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 지난 10여 년 간 전국의 천연기념물 나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기념 사진을 박고 또 나무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담은 이 책을 통해, 묵묵히 한 자리를 지키며 나이테에 천 년의 역사와 천 가지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喜 … 사랑 때문에 기쁘고 소중한 인연 때문에 한없이 기쁘다
임금님과의 인연으로 얻은 영광
모두가 열광하는 새콤달콤한 초록 과일-창덕궁 다래나무
설렁탕 한 그릇으로 허기와 슬픔을 달래다-용두동 선농당 향나무
똘배들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난 맛 좋은 청실배-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
자연이 준 선물 하나, 최고의 지붕 재료-울진 굴참나무
나무 나라 최고의 벼슬을 2세에게 물려주고파-속리산 정이품송
애틋한 사랑 나무
흔들리는 사랑 붙들어주는 사랑의 묘약-오류리 등나무
남북분단은 은행나무 부부마저 갈라놓았다-강화 서도면 은행나무
못다 한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굳게 믿으며…-영광 불갑면 참식나무 자생 북한지대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아-지리산 천년송
우리나라 최고의 나무
마의태자가 남긴 恨의 징표-용문사 은행나무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 그 비결은?-정선 두위봉 주목
나무 나라 최고 미인답게 그 자태가 아름답구나-무주 설천면 반송
특별함으로 살아남은 사연
황금비 내리는 축복받은 땅 그곳으로…-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
800년을 대이어 버텨온 묘지기 나무-부산진 배롱나무
세상의 썩은 정신들이여! 소태맛 좀 보련가-송사동 소태나무
뿌옇게 안개 낀 날에는 소나무와 데이트를…-상주 화서면 반송
勞 … 쉬고싶다. 세상의 근심 모두 짊어진 어깨가 무거워, 이젠 좀 쉬고싶다
나라 지킴이 나무
이 추운 날 갑곶에는 왜 가십니까?-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벚나무는?꽃놀이?를 위한 나무가 아니었다-화엄사 올벚나무
남해안의 왜구를 눈속임하던 고마운 나무-광양 유당공원 이팝나무
치료약에서 바둑판까지, 팔방미인이라네-병영면 비자나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다-남해 창선면 왕후박나무
절집의 지킴이 나무
막걸리를 먹고 사는 운문사의 애주가-운문사 처진소나무
800년 긴긴 세월을 쌍지팡이에 묻어두다 -송광사 곱향나무 쌍향수
선운사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고창 삼인리 동백나무 숲
당당하게 세금 내는 나무
자기 땅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나무-예천 감천면 석송령
哀 … 슬프다. 이슬 맺힌 나무 잎사귀에, 앙상한 나뭇가지에, 슬픔이 배어 있다
비극의 현장을 지켜본 나무
희고 고운 껍질로 좋은 일을 예감하다-서울 재동 백송
하늘이여! 억울하고 원통하다-영월 관음송
저승에서라도 이밥을 배불리 먹거라-진안 평지리 이팝나무
마지막 남은 희망을 이 나무에 걸었으나…-삼척 근덕면 음나무
두 손 모아 자식의 합격을 기원하다-삼척 도계읍 긴잎느티나무
선비들이 나무를 심은 까닭은
물 설고 낯선 땅에서 고향 생각하며…-예산 백송
내 사랑 뿌리치고 어찌 그리도 빨리 가느냐-함양 학사루 느티나무
세상에 널리 쓰이던 만병통치약-독락당 중국주엽나무
모든 근심 훌훌 털고 하늘로 날아오르다-백사 도립리 반룡송
낙도를 지켜온 섬 살이 나무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시 살아나-완도 예송리 감탕나무
내가 너를 그리워할 때, 너는 바다를 그리워하는구나-진도 관매리 후박나무
훼방꾼이 너무 많은 작은 섬마을에서-추도 후박나무
樂 … 욕심과 근심을 버려서 즐겁고 모든 만물을 사랑하니 즐겁다
멋쟁이 선비를 닮은 나무와 숲
동백의 황홀함이 무아지경으로 이끈다-백련사 동백나무 숲
사시사철 바람결에 끊이지 않는 저 향기로움-달성 측백수림
서당 나무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서울 문묘 은행나무
恨 많은 여인 인목대비의 혼이 깃들다-합천 묘사면 소나무
힘든 농사일의 쉼터가 된 나무
나체가 더 아름다운 겨울 멋쟁이-대구면 푸조나무
오늘은 날씨 맑음! 똑똑한 기상 캐스터-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김제평야의 수호천사 왕버들과 만나다-김제 봉남면 왕버들
500년 세월을 무색케 하는 젊은 나무-부산 구포동 팽나무
목민관의 백성 사랑 나무
이곳에 뱀은 얼씬도 하지 말라-함양 상림
한라산 신령님을 불러 내리던 영험한 곳-제주시 곰솔
커다란 꽃 뭉치를 정성껏 심고 가꾸었더니…-마량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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