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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하며 산다. 그동안의 수많은 역사적 수모나 비극적 참사들을 잊어버리며 즐겁게 웃는다. 방심하며 다시 실수를 반복한다.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없고, 끔찍한 기억이 절대로 사라지지도 약해지지도 않는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없으니까. 때로 망각은 좋은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일에는 매우 요긴한 인간의 특성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지킬 수 있었는데 지키지 못한 너무 많은 수의 생명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와 대구 지하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은 내게 비슷한 무게로 다가오는 마음 아픈 참사다. 어릴 때 종종 텔레비전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를 보았을 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와르르, 몇 초 만에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땐, ‘건물은 이렇게 무섭게 무너지는구나’ 했고, 매몰되었지만 기적같이 살아난 생존자를 볼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건 그냥, 너무 큰 고통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되새기는 삼풍 백화점 사고에는 더 많은 생각들이 달라붙었다. 젊었던 엄마도, 대학생이었던 나도 백화점 건물 안에서 일했다. 만약 당시였다면 업무 도중 빠릿빠릿한 눈치로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을 감지한 뒤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1995년 서울, 삼풍>은 지은이 이름에 적힌 ‘기억 수집가’라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다양한 방면에서 사고를 접했던 이들의 기억을 꼼꼼하게 재조립한 책이다. 생존자, 희생자의 유족, 지인,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구조 작업을 담당했던 소방관, 민간 구조자, 건축업자, 기자, 의사, 봉사자……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힘썼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슬픔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현재까지 이어오는 고통에 대하여 상세하게 전한다. 구술자의 심리와 행동을 괄호 안의 지문으로 강조함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고의 정황 속에는 몰랐던 사실도 정말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함’을 감지했으나 갖가지 이유로 피하지 못했고, 역시나 주변 건물의 사람들과 민간 봉사자들은 직접적으로 수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절도를 목적으로 봉사에 합류한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고). 당시 응급 의학 자체가 미비한 상태여서 체계적인 제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일이 많았으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불과 몇 초 만에 무너진 건물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유족들이 있었고 난지도에 버려진 건물 잔해 속 부분 시신까지도 간절하게 바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었다. “건축은 의사, 변호사처럼 사회정의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축가나 건축계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면 그런 결과들이 초래됩니다. 고객이 이렇게 해달라 요구할 때 건축가가 이런 이유로 안된다 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았겠죠. 그런데, 네, 알아서 하세요. 도장 찍어줍니다.” 건축에 대한 이 한 마디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은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무언가를 만들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일들이 때때로 무시된다. 수많은 안타까운 사고의 시작이 작은 한 마디라고 생각하면 순간 섬뜩해진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기억’의 슬로건이 대두된 이후로, 2년 뒤 이 책이 출간되었다 (종종 구술자의 발언에서 세월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월호 유족들에 관련한 비방이 거세질 때, 지겹다는 말이 지나치게 많이 들려올 때, 세월호가 지겹다는 이들에게 삼풍 생존자가 쓴다는 글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링크).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인간의 예의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이다. 매번 기억하며 우울 속에서 살아갈 리 만무하지만, 감시의 역할로도 기억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기억을 이렇듯 온전히, 한숨과 말줄임표 하나까지 꼼꼼히 담아준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 친구가 무너지기 30분 전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백화점이 너무 덥다. 옥상에 균열이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에어컨이 멈췄다더라. 그런데 이상하다, 분위기가.’ 이 친구가 1층 로비 바로 앞에서 근무하니까 사람들이 나가는 게 보이잖아요. 윗사람들, 경영진들이 굉장히 급박하고 왠지 모르게 긴장된 모습으로 빠져나간다는 거예요. “이상해.” 계속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잖아요, 백화점이 무너질 거라는 걸. 저도 좀 이상한 느낌에 “너도 매장 두고 퇴근하는 건 어때?” 그랬어요. 그랬더니 “저 물건들 비싸잖아.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해. 내 책임이 될 텐데” 하더라고요. ●평생 잊혀지지 않는 분이 계셨는데 아주 작고 왜소한 체구에 도배, 페인트 일하는 분이에요. 저희가 엄청난 먼지와 악취 속에서 숨쉬기도 힘들어하면서 작업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는지 커다란 널빤지를 가지고 오셨어요. 합판 부스러기인데 저희가 굴을 파고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바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기를 불어넣어주셨어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뒤에서 공기를 넣어주면요, 작업 환경이 정말 좋아져요. 작업하다가 뒤돌아보면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안경 고쳐 쓰고 닦아가면서 저희에게 계속 부채질을 해주시는 거예요. 저는 그 분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구조 대원들 모두 입 모아 말했어요. ‘저 아저씨는 상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활이 안 된다, 이 정도는 아닌데 무너질 걸 항상 대비하죠. 어디로 튈까, 그런 생각을 해요. 위에서 뭐만 떨어져도 무서워요. 이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뭐가 흔들리기만 해도 겁나고 바람이 불어서 문 같은 게 꽝 닫혀서 아래층이나 위층이 울리면 ‘아, 문 좀 잠가놓지’ 이런 생각 하죠. 고층도 싫어 못 살겠어요. 어쩌다 한번 누구네 집에 놀러가면 몰라도 고층에서는 못 살아요. ●죽은 자와 산 자의 짐은 다릅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짐을 산 자한테 떠넘기고 가요. 살아 있는 자는 그 짐을 평생 지고 가는 거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짐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뭐냐, 내가 달라져요. 건장한 스무 살 짜리 애가 들던 짐의 무게와 지금 드는 짐의 무게가 똑같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옛날 생각하실 적에 더 아파하고 슬퍼하잖아요. 제가 남기고 싶은 말은요,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다, 몇십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가 아닙니다. ‘몇십 년 후에는 더 힘들어질 거다. (죽은 자가 남긴 짐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입니다. 그러나 꼭 남기고 싶어요 ‘그러나’라는 단어를요. 또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진행 중이라는 ‘ing’라는 단어를요. 견디고 또 참아내면 저희 세대로 끝나겠죠. 하지만 제 자식 세대가 그 짐을 들고 가게된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도시는, 특히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망각을 근본 원리로 하고 있다. 재난에 의하여 먼저 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상흔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하여 자연 치유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일종의 무책임한 운명론이 그 상흔들을 압도해버린다. 누군가가 기억을 하고자 하면, 왜 기억하는가, 무슨 의도로 기억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윽박지른다. 우연적인 사고로 축소하여 도시 일상의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대책은 고사하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힘들이 모든 상처 입은 자들과 고인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버린다.   

21년 만에 기록된 삼풍백화점 참사 개인들의 기억세월호 참사와 달리 삼풍백화점 참사의 당사자들 이야기는 한데 모인 적이 없다. 이는 21년 전, 희대의 참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몰인정한 상식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은 재난의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하는 구술·기록프로젝트이다. 5명의 ‘기억수집가’가 2014년 10월 7일부터 2015년 7월 30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총 108명을 인터뷰했다. 책에는 59명의 구술이 실렸다.당사자들이 재현한 기억의 몽타주 씨줄과 날줄은 하나의 배경 화면으로 엮어진다. 바로 지하4층, 지상5층의 호화 백화점 최후의 조감도이다. 이 조감도는 타자화된 언어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는 ‘화자(구술자)’의 언어로 재구성된 화면이다. ‘기록된 적 없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역사’가 될 준비를 마친 것이다.

1장 우리는 삼풍백화점에 있었다: 참사 24시

한낮의 붕괴 조짐
농담 삼아 백화점 무너지는 거 아냐 - 삼풍백화점 직원 김현주 씨
영업은 백화점 문제였죠 - 서초경찰서 강력반 반장 김홍수 씨
어수선한 직원들의 무전기 - 노동운동가 하종강 씨
붕괴 직전, 친구와의 통화 - 희생자 친구 홍은영 씨
오후 5시 55분, 붕괴의 순간
3초 만에 무너진 백화점 - 삼풍주유소 직원 오영상 씨
전화로 기사 쓰는 기자 - 조선일보 사회부 법조출입기자 홍헌표 씨
엎친 데 덮친 격, 화재 - 서초경찰서 강력반 반장 김남목 씨
건물이 무너져도 금고는 지킨다 - 민간구조대 엄경의 씨
폭발이라는 허위 보도 -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건축부장 박홍신 씨
시루떡처럼 주저앉은 건물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원인규명감정단 정란 씨
일부의 일부만 남아 있는 시신들 - 구조 현장 응급의 안명옥 씨
생사의 갈림길, 구조 현장
연장을 들고 나온 시민들 -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조현삼 씨
목숨을 내건 민간구조대 - 민간구조대 박지석 씨
강원도에서 온 ‘광부 구조대’ -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 광원·파견구조대
도주동 씨
이분이 제 생명을 살려줬어요 - 민간구조대 민경덕 씨
지휘 체제 없는 아수라장 - 서울소방본부 구조구급과 구조주임 이일 씨
아저씨, 제가 더 못 살 거 같애요 - 도봉소방서 구조대장 경광숙 씨
서울시장 송별 행사 중 들려온 비보 - 서울시 기획관리실장 김의재 씨
도둑질과 취재 경쟁 사이에서 - SBS 보도국 기자 성회용 씨
온몸에 들이부은 식용유 - 강남소방서 구조대원 현철호 씨
실종자 가족 대표를 선출한다는 것 - 서울시 보사환경국 국장 권오호 씨
생존자를 위한 담요, 망자를 위한 장의낭 - 대한적십자사 재난구호팀 이철수 씨
오밤중에 챙긴 드링크제 1만 병 - 봉사약국 책임자 장복심 씨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구조 인력 - 서울대학교병원 의사 왕순주 씨
매몰자의 삐삐를 울려라 - 한국이동통신 직원 신왈현 씨
자원봉사자들의 불신 - 자원봉사자 최세진 씨
삼풍 직원들의 자원활동 - 삼풍백화점 직원 유승주 씨
장사를 접고 구조 현장으로 간 어머니 - 자원봉사자 신영주 씨, 이명주 씨
소방호스로 씻어낸 시신 냄새 - 자원봉사자 김춘자 씨
실종자 가족을 돕는다는 것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국장 유해신 씨
제2의 현장, 병원
순식간에, 수백 명 - 강남성모병원 원장 김인철 씨
총알택시가 된 버스 - 강남성모병원 간호사 조윤미 씨
좀비처럼 쓰러지는 환자들 - 강남성모병원 간호사 박현숙 씨
혼돈의 30분 - 강남성모병원 응급과장 김세경 씨
환자를 분산시키는 작전 - 강남성모병원 의사 박규남 씨
두 딸을 찾으러 온 바바리코트 신사 - 강남성모병원 간호사 정윤희 씨

붕괴의 책임과 처벌
무너진 건물 속 증거들 - 서초경찰서 강력반 형사 박명섭 씨
골프채를 훔치던 사람들 - 서초경찰서 순경 김근영 씨
600구의 시신과 수사직원 - 서초경찰서 강력반 반장 고병천 씨
신원 확인은 국가의 일 - 대검찰청 유전자분석실 변사체처리반 이승환 씨
부실시공의 흔적 - 대한 건축사협회 이사·특별점검대책반 이종관 씨
무용지물이 된 설계 도면 - 대한주택공사 건축구조과장·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원인규명감정단 서형석 씨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비전문가들 - 서울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조사 책임자
이리형 씨
피해 보상과 회장의 재산 - 서울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보상담당자 우대영 씨
신축 5년 만에 골병든 건물 - 서울지방검찰청 형사1부 검사 정성복 씨
붕괴, 과실일까 고의일까 - 서울지방검찰청 형사1부 검사 이상권 씨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 서울지방검찰청 형사1부 검사 이경재 씨
튼튼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 대한건축학회 김명준 씨

부록
기억의 재구성 1. 수사와 판결
기억의 재구성 2. 재난과 응급의학
기억의 재구성 3. 사건개요
기억의 재구성 4. 시간대별 상황

2장 살아서 돌아오다: 생존자의 기억

샹들리에가 덮쳐서 살았어요 - 생존자 김고미 씨
여덟 살은 너무 무력했습니다 - 생존자 박민기(가명) 씨
피투성이로 지하철을 탔어요 - 생존자 박은희(가명) 씨
진짜 너무, 분노스러워요 - 생존자 김연수(가명) 씨
자식들은 모릅니다 - 생존자 주성근 씨

3장 남겨진 사람들: 유가족의 기억

손가락, 발가락을 붙들고 울었어요 - 유가족 조종규 씨
망자는 짐을 주고 떠납니다 - 유가족 손상철 씨
딸에게는 ‘꿈의 매장’이었어요 - 유가족 이순자 씨
유가족 텐트촌에서 20일을 보냈습니다 - 유가족 허재혁 씨
이상하게 아범이 아직 안 와요 - 유가족 이순남 씨

4장 ‘사회적 기억’으로 가는 길

백화점 그리고 에스컬레이터 - 박해천 (동양대학교 공공디자인학부 교수)
망각의 골짜기에서 기억을 말하라! - 정윤수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에필로그
기록하는 사람들 - 기억수집가 류진아, 홍세미, 박현숙, 최은영, 김정영
역사가 되는 목소리, 예술이 되는 스토리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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